개요
소개

병령사세계문화유산관광지구는 간쑤성 린샤후이족자치주 융징현에 위치하며 총면적은 180평방킬로미터이고 병령호, 병령단샤국가지질공원(병령석림), 병령사석굴의 3대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0년 12월 국가문화및관광부로부터 "국가5A급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平方公里
旅游区总面积
大片区
旅游区片区
级旅游景区
被国家文化和旅游部
병링호

병링호는 류자샤 수력발전소의 저수지로서 수역면적이 130평방킬로미터이고 저수용량은 57억입방미터에 달하며 수질이 맑고 오염이 없어 국가2급 음용수 기준에 도달하였으며 저수지 끝에 있는 병링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물안개가 자욱한 호수는 마치 끝없는 푸른 비단이 산속에 출렁이며, 경치는 강남의 수려함과 고원의 웅혼을 한데 모아 관광객들의 마음을 끄는 관광명소이다. 그중에서도 “황도 합류”는 황허와 도하가 합류하여 형성된 장관이다. 류자샤 수력발전소는 우리 나라가 자주적으로 설계하여 건설한 아시아 최초의 백만 킬로와트급 수리중추공사로 전국 공업 유산, 전국 애국주의 교육 기지로 선정되었다. 


병령석림

병령석림은 신생대 초기 백악기에 자홍색 세사암이 퇴적되어 형성된 단샤 지형이다. 2011년 국토자원부에 의해 병령단샤국립지질공원 설립 허가를 받았다. 지질공원내에는 천개의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고 만개의 골짜기가 종횡으로 뻗어있으며 수백개의 지구가 굽이굽이 돌아 있고 형태가 각기 다른 석봉들과 함께 기이한 석림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마치 천연 조각관처럼 매우 높은 지질과학, 관광개발, 자연미학, 생태보호가치를 가지고 있다. 


병령사석굴

병령사석굴은 16개국 서진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이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2014년에 ‘세계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석굴은 주로 하사구, 상사구, 동구구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현재 216개의 굴감, 800여 점의 각종 조상, 장,한 양식의 벽화 1,000여 평방미터, 불탑 56기, 소장품 438점이 있다. 동굴안에 현존하는 서진건홍원년(420년)의 묵서제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명확한 조상기년의 제기로, 초기 석굴암의 분기에 중요한 척도를 제공하였다. 


지리
병령단샤국가지질공원

병령단샤지질공원은 융징현 서남부 양타향에 위치하며 융징현로부터 3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지리좌표는 동경 103°02′-103°05′, 북위 35°02′-35°50′, 총면적은 23.36평방킬로미터, 평균 해발고도는 1,783미터이다. 중생대 말기의 초기 백악기(지금으로부터 1.2억~1억 4400만년 전)의 붉은 육상퇴적지층을 저장 장치로 하여, 대량의 조산대구조의 진귀한 지질유적을 보존하고 풍부한 지구과학정보, 발달협곡, 돌기둥, 봉림, 단산적벽, 천연에칭상형과 조형이 매장되어 있으여 규모가 거대한 단샤식지형경관을 형성하였으며 지학연구와 관광개발가치가 매우 높다. 


병령사석굴

병령사 석굴은 간쑤성 융징현에서 서남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지스산의 대사구 안에 위치한다. 병령사가 있는 적석산의 지질구조는 세황사암으로, 굴착 조각은 쉽지만 풍화조해에 약하다. 이 곳의 기후가 건조하고, 게다가 절벽의 높은 곳, 암층은 종종 처마처럼 돌출되어 일부 굴감에는 비바람과 태양 노출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굴감조상들은 비록 천 백년의 세월을 거치더라도, 지금까지 상당히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병링호

간쑤성 린샤 융징현 서남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란저우시에서 7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협곡과 천지가 서로 어울려 나타난다. 강물이 천암벽으로 우뚝 솟은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며, 물살은 마치 만마가 내달리는 것 같아서 경치가 매우 장관이다. 


보호
황허보호

황산은 흰 흙머리이고 황하는 서쪽으로 흐른다’이것은 류자샤에서 널리 퍼진 말이다. 

어머니강 지키기’는 대규모 사회적 공익 활동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는 교육 캠페인에서, 어머니강 보호공사과 어머니강보호기금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목적은 청소년을 포함한 가장 광범한 사회역량을 동원하여 중화민족의 어머니강인 황허 등 강과 호수 유역에 식수조림하여 수토를 유지하고 오염을 방지하며 녹색문명의식, 생태환경의식과 지속가능발전의식을 창도하고 수립하여 국가생태환경건설에 기여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융징현은 황허의 생태환경을 개선하고 수토유실을 억제하며 어머니강을 보호하기 위해 일련의 황허유역 생태보호 특별주제 안배회를 개최하였다. 현 지도자는 황허가 융징을 거쳐 107킬로미터를 흐른다고 융징 인민을 행복하게 했으며 우리도 황허를 보호하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정비하는 업무 요건에서, 계통정비, 원천정비, 종합정비를 두드러지게 하고 국가의 중대한 생태보호복구와 건설공정을 잘 실시하며 수토유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하천과 호수장제실시와 전역쓰레기 없는 특별정비행동을 추진하며 음용수원지보호를 엄격히 강화하고 각종 환경위법행위를 엄격히 단속하여 생태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 절수산업과 기술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농업절수를 추진하며 전 사회 절수행동을 실시하고 수자원의 집약, 절약이용을 하며 오수처리장 등 환경보호시설의 운행상황을 전면적으로 감독검사하고 생활오수를 생산하여 집중적으로 수집처리하며 오수가 황허로 직접 배출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세황허유역의 생태보호와 고품질발전을 위한 각종 조치를 실시하여 황허가 광범한 대중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한 강”이 되도록 한다.


석굴암 보호

석도세’법원주림’문헌에 의하면 병령사석굴의 개착역사는 “진태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즉 서기265년이다. 서기 763년, 토번이 농우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이곳에 토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 외에 많은 토번 이민자들이 북상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여 병령사 석굴에 수많은 조각상과 벽화를 짓고, 불굴에 대한 중수와 재화를 진행하였다. 11세기에는 서하와 송나라가 교전을 벌였고, 서하의 명령으로 다리가 파괴되고 실크로드가 길을 바꾸면서 한때 명성을 떨쳤던 병령사는 이때부터 한산되었다. 15세기에 티베트 불교가 병령사에 들어와 청나라의 강건시기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가 정성에 이르렀고, 병령사의 불교 활동은 새로운 부흥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청나라 말엽부터 병령사 석굴이 있는 하주지역의 민족 갈등은 날로 심화되어 건륭제 46년, 동치 7년과 13년, 광서(光二十) 21년, 민국 17년의 사회 난리가 잇따라 병령사에 심각한 파괴를 초래하였다. 그 중 제128호, 제147호 등 대형동굴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고, 대불 앞의 9층 누각, 목조 굴처마 등 사원 건물이 태워 버렸으며 일부 정교한 불교 석조상들은 머리가 잘리고 팔이 부려져 몸이 다른 곳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1952년 9월,중앙인민정부 문화부는 중앙미술대학, 서북군정위원회 문화부와둔황문화재연구소의 3개 부서를 조직하여 13명의 전문가, 학자, 기능공을 선발하여 "병령사석굴탐사단"을 구성하고 1주일 동안 병령사석굴에 대한 세밀하고 전면적인 탐사와 이해를 하였다:사진촬영, 모사, 측량, 동굴내용조사 등 처음으로 석굴하사구 동굴에 대한 예비번호를 매겨 총 124개의 굴감을 편찬하였다. 1955년 5월 융징현 병령사 문물보관소가 설립되어 가치가 있는 동굴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 병령사 석굴이 오랫동안 방치되던 시대를 마감하였다. 1961년 3월 4일, 국무원은 정식으로 병령사 석굴을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 단위로 발표했다. 1963년 4월부터 5월까지 간쑤성 문물공작대와 병령사 문물보관소는 병령사 석굴에 대한 2차 탐사를 진행하여 처음으로 가장 높은 169굴에 올라가 수많은 서진시대 조상과 벽화를 발견하였고, 제6감에서는 서진건홍원년(서기420년) 묵서조상의 제기를 발견하였다. 1967년에 굴을 호위하기 위해 돌제방을 쌓았다. 1982년에 다쓰구 양쪽에 연결해주는 아치형 시멘트 다리가 건설했다. 1999년에 국가는 또 거액을 들여 석굴의 보수 및 보강과 침출수 관리 공사를 했다. 2008년 10월 7호, ‘병령사석굴보호관리방법’이 정식으로 반포하여 시행되었다. 


비유보호

융징나무극은 민간에서 속칭 “7월나무술극”이라 하는데, 이는 그 해에 오곡이 풍성하고 신의 소원을 들어주며, 다음해에는 날씨가 좋아서 사람이 평정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풍년엔 나춤을 추지만 흉년엔 나춤을 추지 않는다. 그것은 주로 간쑤성 융징현 서부산구의 양타, 왕타이, 홍천과 삼더기 등 향진 한족이 모여 사는 마을, 그리고 린샤현 북더기 1위인 서가와 화정현에서 전해진다. 융징의 나무은 이 지역 역사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산과 물이 이어져 있는 칭하이 성민들과 현 삼천 지역, 토족 민중들이 주최하는 “납돈절”에도 전해져, 나이 나무 나희등 방면에서 융징의 7월 춤회과 완전히 일치한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볼 때, 영구나무와 귀주안순지희도 여러 가지 같은 점이 존재하지만, 문헌에 의하면 영구나무는 귀주안순지희보다 더 앞섰으며, 안순지희보다 더 원시적인 의발을 간직하고 있다. 융징나이, 나무, 나희를 주요 상징으로 하는 나문화는 수천 년의 여러 문화의 축적이며, 다원종교, 민속, 음악, 무용, 탈예술 등의 복합문화체로 지금까지 실골의 ‘문화공간’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연극의”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2008년 융징나무나희(7월춤회)은 국무원이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확장 프로젝트로 발표했다. 


특색
병령사석굴

병령사는 원래 “당술굴”이라고 불렀고 강어로” 귀굴”이라는 뜻이다. 후력에는 용흥사, 영암사라고 불린다. 명나라 영락년 이후 티베트어 “십만불”의 음역을 따서 “병령사” 혹은 “빙령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현존하는 굴감은 183개이며, 조상은 거의 800신에 가깝고, 석태 이소과 이소의 세 종류로 나뉘며, 부조석탑은 25기, 벽화는 약 900평방미터이다. 그 중 169굴은 천연 석굴 중 가장 큰 규모로 뚫려 있다. 병령사 석굴상은 776좌로 석상 694좌, 이소 82좌이며 주요인물로는 석가모니, 관세음보살, 무량수불, 미륵불 및 각종 보살, 부처 등이 있다. 형태은 개괄적이고, 수법은 간결하며, 사지는 반나체이며, 치마는 날렵하고, 자태는 우아하며, 정중동하며, 비례의 조화는 서북의 혼후하고 거친 신운을 충분히 구현한다. 세계유산 ——병령사는 당나라 때 용흥사라고 부르고 송나라 때 영암사로 부르고 16국 시대에 처음 건립되었다. 석굴은 상사, 동구, 하사 세 곳으로 나뉘는데 대사구 양안의 홍사암 위에 분포되어 있고 동굴은 층층이 겹쳐져 있으며 잔도는 구불구불 빙빙 돌며 올라간다. 병령사는 서진에서 창건되어 북위, 서위, 북주,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각 대를 거쳐 증축되었으며 지금으로부터 이미 1600여년의 역사가 있다. 


류자샤대호풍경관광지구

황허 수력발전박람원, 류가샤댐, 병령호 및 연안 나루터 관광지를 포함합니다. 황허 수력발전박람원 내에 대형 관광 여객 운송 서비스 센터를 설치하여 관광객을 태우고 집산으로 사용한다. 현재 여객운송선박서비스가 있고, 미래에는 버스셔틀과 헬리콥터비행관광교통여객운송서비스, 호수일주관광체험서비스 및 육지상통관광체험서비스 등을 개설될 예정이다. 류자샤 댐은 고원의 협곡에 위치하여 “고원의 명주”로 불리며 경치가 장관이다. 건국초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 우리 나라 노동계급이 자력갱생, 간고하게 창업의 혁명정신을 발양하여 스스로 설계하고 시공하고 설치한 백만킬로와트급의 대형 수력발전소는 중화민족이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자연을 향해 과감히 진군하는 상징으로 1995년에 성위원회, 성정부에 의해 전 성의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명명되었다. 고원의 “몰디브”로 불리는 병령호는 총 길이가 66킬로미터이고 수역 면적이 약 150평방킬로미터이다. 호수는 융징, 둥샹, 지스산과 린샤의 4개 현과 접하고 있으며, 황도합류와 샤황합류하는 수역의 특이한 경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연화고도, 기가고도, 황허고도 등 남실크로드 고도유적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고대 하서회랑의 중요한 무역로이다. 


병령단샤지질공원

여기는 기세가 웅장한 천연 조각 박물관이다. 천개의 봉우리가 즐비하고, 수많은 산골짜기가 기묘를 다투고, 봉우리가 모양를 갖추어 되고 바위가 경치를 이룬다.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천 미터의 높이가 있고, 돌길이 아른거린다. 마치 구름다리 같다. 만불정에 안내가 자욱하여 운천으로 연결되고 사방에 기이한 암벽이 서있고, 절벽이 하늘에 우뚝 솟아 있으며, 여러 봉우리들이 둘러싸인고 있다.”가로로 보면 고개가 되고, 옆으로 보면 봉우리가 되고, 원근 높낮의 각도에서 각각 다르다”,”높은 산이 고개를 들어 가파른 것을 보여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굽은 오솔길은 한적한 곳으로 통하니, 별천지였다.”라 할 만하다. 북위역도원 ‘수경주’에서는 병령석림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하의 북쪽에는 층층이 있는 산이 있다. 산이 매우 수려하다. 산봉우리 위에 입석이 수십 장 있고 정정당당게 서 있어 기세가 다투고 멀리 바라보니, 함께 모여 하늘 위로 솟구칠 것 같다. 명나라 대학학사 해진은 병령석림에 유람한 후에 휘호하여 썼다: 병령사에는 산이깎인 것 같다.측백나무는 마치 용이 산바위에 휘감아 산이 푸르게 보인다. 게다가 얼음 다리가 있는 것이 가장 기이하고 은무지개가 구름다리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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